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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論 및 漢詩敎授法

광명기계쟁이 2015. 4. 21. 09:54

 

漢詩論 및 漢詩敎授法

한시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음악성이다. 내용과 의미를 더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는것보다 느끼는 감이 더 중요하다. 古體詩·近體詩를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음악성이다. 음악성을 일부 무시하는 것은 고체시이고 음악성을 엄격히 지키는 것이 근체시이다. 근체시를 今體詩로 쓰기도 하는 이유는 음악성으로 보아서 예술적으로 최고 경지에 도달하여 지금 보아도 더 올라갈 경지가 없어 今자를 붙여 사용한다.
尋 隱 者 不 遇 - 가 도
松 下 問 童 子
言 師 採 藥 去
只 在 此 山 中
雲 深 不 知 處
첫구는 問이고 師부터 處까지가 동자의 答辯으로 보는 것이 좋다. 공간적으로 동자와 작자가 마주한 소나무 아래의 한 시점에서 커다란 산으로 확장되고 다시 깊은 구름 속의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줄 모르는 무한공간으로 확대된다.
시를 검토할 때에는 항상 시간, 공간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시의 정의는 時, 空, 情, 理로 時, 空을 景이라 하고 情, 理를 情이라 한다. 윗 시는 시간적으로 볼 때 질문을 하는 현재와 스승이 약초캐러 간 과거, 다시 스승이 이 산중에 있는 현재, 구름이 깊어 앞으로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미래로 구성하여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경지를 그리고 있다.
은자를 찾아갔는데 찾아가자 마자 은자를 찾으면 재미가 없다. 은자도 사람인데 언젠가는 만날 가능성이 있지만 만나지 못하여 서운한데 다시 동자를 만나니 동자는 항상 은자와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라 만날 희망이 생겨나는데 스승이 약초를 캐러 갔으므로 만날 수 없는 절망이 생겨나고 다시 이 산중에 있으니 만날 가능성이 있으나 다시 구름이 깊어 그 넓은 산속에서 만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겨나도록 배치하고 있다.
詠井中月 (우물 속에 달을 읊다) - 이규보
山僧貪月色 산승이 달빛울 탐하여
半汲一甁中 한 바가지 길어 넣어
到寺方應覺 절에 돌아와 때마침 깨닫게 되니
甁傾月亦空 바가지가 기울자 달 또한 사라지네.
글에는 陰文과 陽文이 있는데 陰文은 논어처럼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로운 글을 뜻한다. 陰文은 문장이 짧은데도 많은 뜻을 담고 있는 함축성이 있고 陽文은 맹자처럼 한 번 캐고 나면 새로운 맛이 없이 명확한 글이다. 옛날 사람들은 孟子千讀者와는 訟事를 벌이지 말라고까지 하였다. 言盡而意不盡 意盡而味不盡이라하여 겉 뜻과 달리 속뜻을 음미하기를 권하는 말이 있다.
작가가 남기고자 하는 뜻이 10개라면 3개만 쓰고 나머지 7개는 3개속에 감추어 놓는 것이 좋다.
물을 길러갔는데 '아 ! 달이 좋다' 스님이 욕심을 내어 내가 가져가야지 하고 바가지에 함께 길어 넣었는데 절에 돌아와서는 깜빡 잊고 있다가 '아차 ! 내가 달을 가져왔지 !'하고 바가지를 들어 보니 바가지가 기울어 달 또한 사라진 것이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니 별 볼일 없는 시처럼 보이나 각 구의 끝글자들을 연결해보면 色中覺空이라는 글자가 된다. 시인은 어린애같은 천진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온갖 사물을 꿰 뚫어 보는 심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산속에 들어간 것은 탐진(남을 미워하여 꾸짓는 것)을 위해서이지만 보통 사람은 재물 권력을 탐한다. 여기에서 스님은 달빛을 탐하는데 과연 달빛을 탐하는 것을 탐한다 할 수 있는 것인가 ?

시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오언절구로 20자라는 작은 그릇속에 작자의 모든 심정을 담아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全唐詩를 보면 오언절구는 칠언절구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한시의 형식에서 따질 것은 音數律(글자수), 押韻律(운을 다루는 규칙) 音調律(음율 平仄)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한시의 3요소라 하고 음악의 3요소는 리듬, 하모니, 멜로디이다. 押 : 달다 압.
*한시 이외의 다른 시는 1줄을 行이라 하나 한시는 句라 한다. 그래서 句數, 句式(글자수)을 따진다. 구식이 일정하지 않으면 구식이 흩어져 散文이 된다.
押韻중 중간에 다는 것을 要韻이라 하고 첫 자에 운을 단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으나 그것은 아니다.
日去月逝는 去와 逝가 운이므로 要韻이 된다. 앞에 운을 단것처럼 보이는 것은 거꾸로 읽어도 시가 되고 바로 읽어도 시가 되는 시로 回文詩라고 한다. 즉 앞에 있다고 頭韻은 아니다. 회문시는 이조시대 '두도'라는 사람의 아내 '소희'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운을 단 간격이 어떠냐(隔韻)도 한시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매구 마다 집어 넣는 것도 있다. 운을 평성자로 하느냐 측성자로 하느냐도 본다.
음조율 : 한자는 한글자 한글자 하나 하나가 독특한 성조가 있어 성조를 맞춰 지으면 자연히 음악성이 나타난다. 고저장단이 이미 글자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압운도 음악성과 관련이 있는데 고체시중 80∼90%는 평성으로 운을 단다. 각운을 평성으로 하는 이유는 평성은 가장 길게 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노래가 끝(節奏)을 길게 발음하는 것과 유사하다. 근체시중에는 측성으로 짓는 경우가 있는데 짧게 끝나는 노래나 시는 씩씩한 느낌 외치는 느낌이 있다.(군가 : 사나이로 태어나서 ∼ 있지만)
한시의 내용
①政治性 : 통치자의 덕을 찬양하고, 통치자와 권력자의 잘못을 풍자하거나 그에 고통받는 백성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내용의 시.
②對偶性 : 對偶는 對仗이라고도 한다. 偶와 仗은 모두 짝이란 뜻을 갖는다. 대우성이 강한 것이 한시다. 시는 어차피 구식이 일정해야 되기 때문에 한없이 길어질 수는 없다. 인간의 호흡은 일정한 인터벌이 있어 시가 이루어지고, 한시는 글자수, 음수가 완전히 일치할 수 있다. 이는 한자가 표의문자이기 때문이다. 대우를 맞추기가 문자의 성격상 좋은 것이다. 동양사상은 곳곳에 음과 양에 대비시킨다. 의미상의 대우가 그것이다. 늙고 미약한 슬픔을 쓸려면 먼저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시키는 것이 좋다. 곧 내면에 깔아 오버랩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오버랩을 疊映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것을 맞세워 놓은 것, 대립시켜 놓은 것이라 하는데 의미를 편재된 상태에서 종합된 것으로 파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늙어 슬프다보다는 젊고 늙다하면 늙고 서러운 것을 더 강하게 나타내고 종합하여 더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한자나 한자어처럼 모호한 게 없다. 한 글자가 뜻이 워낙 많아 대구를 통해 글자의 뜻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한자어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이태백의 시에서(p 118) 浮雲은 흰구름이지만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지 못한 나그네, 간신, 세상을 초탈한 득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대구어에 落日이 있어 나그네임을 알 수 있다. 해석 뜬구름은 나그네의 뜻이요, 지는 햇살은 옛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
班馬와 葛亮을 통해 班馬는 반고나 사마천같은 문장가 葛亮은 제갈공명같은 충신임을 알 수 있다.
한시는 다른 사람이 구해보기 어려운 고사나 구절을 인용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 이를 用事 또는 險僻이라고 한다. 翁馬는 塞翁之馬의 고사를 의미한다. 그래서 한시는 言簡意繁이라하여 말은 간략하고 뜻은 많아야 한다.

중국 북경대 교수 王力이란 사람은 문혁때 批林批孔운동의 심판대상이 되어 숙청이 되었다. 과거를 숭상한다하여 화를 입었으나 왕력은 조그만 책을 쓰되 시 대부분을 모택동의 시로 고쳐 써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소극적으로 저항했던 학자라고 한다. 교재는 漢語詩律學을 간략한 것으로 영남대교수가 漢語詩律論으로 번역한 것도 있다.

一. 導言
1.운어적 기원과 그 流變(흘러오면서 변천된 것)
韻語의 발생 : 문자가 창조된 이후에 운문과 산문은 동시에 지어졌다. 운문은 운어로서 기초를 삼고 운어는 문자의 탄생 이전에 있었다. 언어가 발달하려면 턱뼈의 발달이 중요하다. 새소리를 들어보면 일정한 리듬이 있는데 이것이 운어의 예이다. 산문적 성격을 띤 말보다 운어적 성격을 띤 말이 먼저 발달한다. 장자같은 책을 보아도 운문적 성격을 띤 부분이 많다. 춘추좌씨전에 보면 畏首畏尾 身其餘幾(꼭대기에서 두려워하여 꼬리까지 두려워 하면 몸이 거의 남아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조심하라, 절벽에서나 연못가에서도 조심하라)라는 말이 있다. 尾와 幾가 바로 운어적 성질을 갖고 있는 말이다.

제 1기(唐이전)
시에서 운어를 사용하는게 누구나 준수해야할 기준이 없었던 시기이다. 그 이유는 운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비슷한 운을 작가 마음대로 썼던 시기이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적당히 즉 口語에 맞게 압운하였다.

제 2기(육조시대에서 5·4운동시기까지)
육조시대에 한자의 성조적 특성을 분류하여 운서를 만들었다. 운서를 표준으로 삼아 그에 맞추어 시를 지은 시기로 한자는 시대가 지나면 형, 음, 의가 다 바뀌어 새로 태어나거나 소멸되는 단어도 있었다. 글자는 탄생, 소멸의 진화과정을 겪는 것으로 금석문과 같은 것은 이미 죽은 문자가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운서를 다시 만들곤 하였는데 5·4운동 이후 북경대교수였던 진독수나 호적과 같은 이들의 백화운동이 그것이다.

回鄕隅書(고향에 돌아와 우연히 짓다) 賀知章
少小離家老大回 어리고 작았을 때 집을 떠나 늙어 돌아왔네.
鄕音無改 毛衰 고향사투리는 바뀌지 않았는데 내 귀밑머리만 쇠했네.
兒童相見不相識 아이가 보고서 알아보지 못하네
笑問客從何處來 웃으며 묻기를 손님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묻네.
*한시·한문에서는 相이 마주 보다의 뜻이나 우리말은 보다의 뜻에 이미 들어 있어 해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려서 청운의 뜻을 품고 나가서 온갖 신고를 다 겪고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이 돌아왔는데(시간의 단축) 고향은 그대로이지만 나 혼자 늙었네(시간의 단축) 자기 집 문앞에 서니 아이(아들 또는 손자)가 나오는 그 짧은 순간(시간의 단축) 어린이가 말하는 또 아주 작은 시간의 순으로 시간을 극히 압축하여 지은 시이다. 시간이 압축되어 가며 시적 강도를 더해간 시이다.
당연히 알아보아야 할 존재를 몰라보고 그 집 주인이 분명 자신일 텐데 客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그 동안 겪은 辛苦, 고통, 서러움이 울컥 솟아 오를 때 시가 끝남으로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나이 든 사람이 자기 인생의 행로에 따라 읽으면 읽을수록 다 맛이 다를 것이다. 이 순간 한 찰라속에 자신이 헛산듯한 느낌을 주고 압축력이 강하면 강할수록(詩的 强度) 독자에게 주는 폭발력은 강하다.
첫구의 家자를 중심으로 少와 老를 대비시키고 小와 大를 離와 回를 대비시키고 있다. 글자 하나 하나의 배치가 매우 오묘하여 그냥 허투로 지은 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몸뚱이가 천냥이라면 눈이 900냥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정기가 있느냐 마음이 착하냐를 눈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시 한 수의 핵심이 되는 글자를 詩眼 또는 詩眼字라 한다. 이 시에서 시안자는 客이다. 客이란 단어가 주는 아이러니 또는 패러독스적인 의미를 잘 파악하라. 첫구의 돌아온 사람도 객이요 둘째구의 늙은 사람도 객이요 셋째구의 알아보지 못한 사람도 바로 객이다.
즉흥적으로 지은 시를 卽事라 한다. 이 시도 回鄕隅書라하여 고향에 돌아와 우연히 지은 것처럼 가장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문장가인 소동파의 적벽부도 사실은 수천번 고쳐 쓴 것이라 한다.

漢代의 用韻 : 운서가 나오기 이전으로 압운은 구어에 의존하였다. 구어에 안맞아도 옛날 사람이 옛날 압운에 썼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하였다. 비교적 용운법에서는 관대했다.
육조시대의 用韻 : 남조의 육조는 북조의 5호보다는 평화로운 시기가 오래 유지되어서 문학이 발달하고 글자에 성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귀납적으로 정리한 책이 李登의 〈聲類〉, 呂靜의〈韻集〉, 夏侯該의 〈韻略〉이 있었다. 이 운서들은 한자가 워낙 방대해 모두 수록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육조시대까지는 개인들의 손에 의해 편찬된 것이어서 私家의 書로 불리어졌는데 서로 틀린 것이 많아 운서를 참조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옛날에는 운을 찾아서 뜻을 찾기도 하였다.
隋代의 용운 : 성운학의 중요한 책이 출현하였는데 陸法言의 〈切韻〉이 그것이다. 이것도 사가의 서이기는 하지만 당나라때부터 과거에 시가 출제되면서 운서대로 운을 달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당나라때에는 陸法言의 〈切韻〉을 〈唐韻〉으로 책명을 고쳐 사용하여 법전과 같은 권위를 갖데 되었다. 처음에는 206개의 운이 있었으나 차츰 112개, 107개, 106개의 운목으로 줄어 들게 되었다.
唐대의 용운 : 〈唐韻〉이 官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과거 시험장에 다른 책의 지참은 허용되지 않지만 운서만큼은 허용되어 컨닝의 역사는 시험과 동시에 생겼다는 말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운을 이해하는데는 어떤 법칙도 존재하지 않아 운서를 참조하여 짓는 수밖에는 없었다.
宋代의 용운 : 〈唐韻〉을 〈廣韻〉으로 바꾸어 108개로 운목을 줄임
元代의 용운 : 108개가 106개의 운으로 압축되어 현재의 운서의 기준으로 쓰인다. 교재의 운목표도 106개로 이는 陰時夫란 이가 平水사람이어서 平水韻이라고 한다. 또 詩에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詩韻이라고도 하였다.
*모든 시가 운서대로 지은 것은 아니다. 제약이 덜한 詞는 운서대로 또는 구어대로 짓기도 했다. 그래서 詞를 詩餘라고 한다. 원나라때 나온 曲은 詞보다도 더 해이해져 詞餘라고도 했다.
*근체시는 지금 지어도 운서의 운목표대로 짓는다.
5·4운동 이후의 자유시 : 우리가 쓰는 한자는 중국의 고어로 文言이라 하고 중국인의 생활에 밀접한 언어는 백화문이다. 백화시 운동은 신체시 또는 자유시로 구어대로 짓는 시이다. 구어의 문제는 중국의 땅덩어리가 너무 커서 각 지방의 사투리대로 지은 시는 다른 지방 사람이 보면 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로 人은 북경에서는 린, 우리는 인, 일본은 진, 복건성이나 운남성에서는 랑으로 발음한다. 우리의 한문은 북방식과 남방식 모두를 들여와 예로 너랑나랑할 때 (爾人我人)의 人이 랑으로 발음되는 것을 들 수 있다.

2.平仄과 對仗
한시에서는 대체로 2글자가 모여서 1박자를 이룬다. 詩經詩는 2박자의 시이고 五言詩는 3박자의 시이다. 그 이유는 맨 마지막에 휴지부를 두어 음악의 쉼표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사언시나 六言詩 등은 휴지부가 없어 소멸되었고 한 句는 한 호흡 사이에서 숨을 내쉬므로 9언시, 11언시 등도 살아남지 못하고 5언시와 7언시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平聲은 가장 길게 발음하는 것(--, )이고, 上聲( , )은 끝을 올리고, 去聲( , )은 끝을 내리며, 入聲( )은 짧게 끝낸다.
입성은 워낙 독립성이 강해서 중국인은 입성을 찾아내기가 가장 어렵지만 한국 사람들은 '국술밥'처럼 종성이 ㄱ, ㄹ, ㅂ으로 끝나는 단어들이 바로 입성이라는 것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다.
한자를 옥편에서 찾아 보면 글자에 박스가 있고 박스속에 점이 찍혀 있는데 왼쪽 하단부에 있으면 평성이고 오른쪽 하단부는 거성, 오른쪽 상단부에 있으면 상성이다.
평측의 기본은 平平仄仄, 仄仄平平처럼 두 개의 한자를 한박자로 삼는데 그 성조가 같다는 것이다. 상, 거, 입성을 평측으로 두는 이유는 한자의 45%정도가 평성이라면 나머지 성조의 합이 55%를 차지하기 때문에 한시를 4개의 성조로 일일이 구분하면 시인에게는 너무나 큰 속박이어서 3개를 측성으로 묶은 것이다. 하지만 두 개의 성조로 분류하여 쓰면 그 배합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고시는 평측기준을 법칙대로 엄격히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고시가 성조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한 구가 전부 평성이어서는 절대 안되고 측성이면 괜찮다. 그 이유는 측성은 다시 3개의 성조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근체시는 평측기준을 법칙대로 엄격히 준수해야 된다. 그래서 근체시를 律詩라고 한다. 이는 格律을 엄격히 지켰기 때문에 붙은 의미로 작은 의미의 律詩는 구가 8개인 경우에 쓴다.
*平仄은 일종의 성조적 관계이다. 육조시대에 沈約이 〈四聲譜〉라는 책을 써서 4개의 성조가 있음을 발견하고 3개의 성조를 묶어 仄聲이라 하였다.
*근체시의 법칙은 두 글자를 하나의 節奏로 해서 평성자와 측성자를 교체해 가며 사용한다. 시의 절주는 그리스의 고전시에서도 나타나는데 詩經詩에도 성조를 따라 지은 시가 있기는 있다.
*오언시의 節을 구분하면 처음 두 글자는 頭節이라 하고 세 번째, 네 번째 글자를 腹節이라하며 맨 끝의 한 글자와 휴지부를 합쳐서 脚節이라 하기 때문에 마지막 구에 압운하는 것을 脚韻이라 하였다. 7언시는 맨 뒷구절에 두 개의 글자가 더 붙는 것이 아니고 앞구절에 두 글자를 더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頂節이라 한다.

塞下曲(국경 또는 변경의 노래) 盧綸

鷲翎金僕姑
솔개 깃에 황금 깃봉 *서술어가 없다. *鷲 : 화려하기는 꿩의 깃이 더 화려하지만 용맹을 중시하는 장수의 깃발이므로 호랑이나 솔개를 사용한다. *僕姑 : 화살 촉 : 깃대에 끝 뾰족한 깃봉을 의미
燕尾繡 弧
제비 꼬리 수놓은 장군 깃발 *서술어가 없다. * 弧 : 제후 또는 장군을 상징하는 깃발
獨立揚新令
장군이 우뚝 서서 돌격하고 명령을 내리니
千營共一呼
장군의 명령을 받은 기갑병, 기마병, 보병할 것 없이 모든 병사가 복창하며 구름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나가네.
*TV화면을 그려보면 기구에선 깃봉에 솔개 깃만 보이고 승구에서는 깃 밑에 끝이 제비꼬리를 달고 그 안에 令이라 수놓은 깃발이 펄럭여 공간이 아래구로 갈수록 확장되다가 결구에선 극대적으로 폭발되도록 유도하는 시이다.
*운문도 원칙은 서술어가 있어야 되지만 한정된 자수로 인해 서술어를 빼기도 한다.
*시에선 氣를 강조하기도 한다. 위 시와 같이 씩씩한 기상을 표현할 때에는 氣를 강조하는게 좋다. 보한집인지 파한집을 보면 氣를 豪邁莊逸이라 하였다. 주춤주춤하지 않고 거침없이 나가는 것이 邁이다. 탁트인 거리에서 천리마가 전속으로 달려오다 내 앞 일보직전에서 급작스럽게 멈추는 것처럼 말이 자신을 덥치고 지나갈 것같은 위압감 또는 독자를 압도하는 것을 氣라 한다. 특히 氣는 고려 무신집권시에 매우 강조되었다. 氣가 강조되는 시는 정교하지 못하고 거친 시가 되기 쉽다. 그래서 氣에 너무 초점을 맞추면 비난을 받는다. 이규보의 시가 고려조에 숭상을 받았지만 성리학이 주도하던 조선조에는 비판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성리학자들은 차분하게 곱씹을 수 있는 문인시를 더 중요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기를 숭상하는 시기가 아니어도 위와 같이 공간적 배경이 국경이라면 기를 중심으로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對仗 : 짝지어 마주해 놓은 것. 한시에서 대장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①한자는 글자수가 음수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一字一音一意性) ②한자나 한문으로 된 어휘의 모호성 때문이다. 상대가 되는 어휘를 보면 모호성을 감소시켜 명료성을 띨 수 있게 된다. 용사의 모호성도 덜어준다. ③偏在性을 綜合性으로 바꾸어 준다. ④동양사상은 기본적으로 음양의 조화를 꾀한다.
*儀仗隊도 혼자하지 않고 짝지어서 한다.
*율시의 함련과 경련은 대우를 해야 한다. 그래서 首·尾聯은 散句라 한다. 대우를 하고 안하는 형식으로 보아 수련과 미련은 대장이 되고 함련과 경련도 대구가 되는 것이다.
*배율과 절구는 결국 율시를 늘이거나 줄이는 것이다.
p 118 화석정
수풀정자에 가을이 이니 늦으니 시인의 뜻은 다함이 없고
언 물은 하늘의 푸르름에 잇다아 있네. 서리 맞은 단풍은 날로 붉고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밖의 바람을 머금어
변방에 기러기 어느 곳으로 가는가 소리는 저무는 구름 속에 끊기네.

*산문중에 대장을 본딴 것이 변문(사륙변려문)이다. 운만 안 달뿐 한문에서는 운문과 산문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있는데 변문도 마찬가지이다. 육조시대에 변문이 유행하다가 당시기에 고문운동으로 서리를 맞은 것은 형식에 대한 추구가 지나쳐 타락한 것이나 조선조 상소문과 같은 글이 사륙의 변려문으로 쓰여지는 이유는 읽기가 편해서이다. 변문은 산문으로 예술적 경지에 이른 것이다. 변문의 대장과 한시의 대장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장에서 同字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예로 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의 문장에서 不이 연속해서 반복사용되는데 이런 격언이나 변문은 동자가 허용되나 한시에서는 거의 불가하다. 또 변문에서는 의미상의 대장으로 그치나 한시에서는 성조의 대장까지 요구한다.
*p 118 화석정을 보면 수와 풍은 같은 종류의 대장이 아니다. 水는 地理요 楓은 花果草木의 식물인 것이다. 이와 같이 같은 종류끼리 대장을 시키면 정교한 대장이라하여 工對라 하고 같은 범주가 아니면 엉성하고 느슨한 대장이어서 寬對라 한다.

3.詩句와 字數
서양시는 한 행이 8음내지 12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시는 한 행이 끝나는 데서 절주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운이 끝나는데서 호흡이 끝난다. 그러므로 한시는 7언율시라고 할때 14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한시는 글자 수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四言詩에서 五言詩, 六言詩, 七言詩로 발전하였다.
한나라때의 시중에 天馬歌라는 것이 있다. 이 시는 3언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언이나 2언, 3언시는 시로 읊기에는 호흡이 너무 가파르다.
또 초사는 구식이 일정하지 않고 또 어조사 兮자가 들어 있는데 원래 의미가 없으므로 글자수를 헤아릴 때 혹자에 따라 헤아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5言시의 발생은 전한시대 李陵과 蘇武의 贈答詩(우정에 관한 시)에서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고증학의 발달이후 후세인의 가탁시 즉 위작임이 밝혀졌다. 枚乘이 지었다는 시도 5언시이지만 고증학의 발달로 위작임이 밝혀졌다. 대개 후한시기(A.D 1∼2C경)에 5언시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4言詩는 안정감을 중시하고 重厚(근엄, 엄숙, 장중)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平板(평범하다), 單調한 것이 단점으로 이는 음악적인 휴지부가 없기 때문이다. 4言詩가 도퇴되었지만 부분적으로 살아남은 이유는 중후한 특성 때문으로 제례의식이나 墓碑銘 또는 墓地銘 倂書 뒤의 운문을 사언시로 짓는 예가 바로 그것이 명시의 최고 경지의 시는 시경시여서 후세인들 중 사언시를 일부러 짓는 경우도 있었다.
5言詩는 言志, 述懷, 云道(說理)에 적합한 시로 과거시험 답안으로 짓는 것이 바로 5언시이다. 행정관료를 뽑는 것이므로 운도나 설리에 적합한 시를 문제로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역량에 따라 7언시도 그 분위기가 다를 수도 있다.
7言詩는 柏梁詩에서 발생했다고 여기나 柏梁詩란 柏梁臺란 누대를 한무제가 건축하고 고관대작중 1句씩 지을 수 있는 사람만이 臺에 올라 낙성식에 참여하도록하여 생겨난 것이라 하나 시는 韻이 생명이므로 두구가 하나로 연결된 聯句로 지은 시이므로 柏梁詩는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韻이 전한시대와 맞게 압운이 되어 있어 전한시대(B.C 2C경)에 지어진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5언시보다 오히려 7언시가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柏梁詩 聯句는 매구마다 운을 달았는데 격구한 오언시의 발달은 7언시보다 더 빨리 나온 것을 알 수 있어 5언시가 7언시에 비해 먼저라는 것도 옳다.
오언시든 7언시든 읽기는 다 2박자씩 읽는데 이는 시경시의 영향이다.


널리 유행한 것으로 따진다면 5언시가 먼저 유행하고 7언시는 육조시대에 비로서 유행하였다.
5언시는 隔句有韻이 처음부터 발달하였으나 7언시는 每句有韻이 먼저 발생했다.
雜言詩는 한 구의 글자수가 일정하지 않은 시로 5언시와 7언시는 일정하여 齊言詩라 한다. 구식이 불안정한 雜言詩는 시경시에도 보이고 어떤 것은 7언시를 기본으로 섞은 것이 있는데 이를 7言爲主 雜言詩라 하고 어떤 것은 기본이 없이 마구 얽힌 것도 있어 이를 錯綜 雜言詩라 한다.
雜言詩를 짓는 이유는 복잡한 심정을 토로할 때 짧은 것도 있을 테고 길게 표현해야 할 것도 있어 지어진 것이다. 雜言詩는 시중에서 산문에 근접한 것으로 압운을 한 것이다. 그래서 交界處에 있는 시라 하고 有韻的散文이라고도 한다.

*書算 : 옛날 사람들이 책을 읽은 회수를 표시하는 종이로 검정 바탕에 하얀 종이를 붙여 책갈피처럼 책속에 넣어두었다. 1에서 만자리까지 대개 표시하였다.

絶句 杜甫
江碧鳥逾白
山靑花欲然
今春看又過
何日是歸年

山靑花欲然은 산이 붉은 것은 靜態이지만 然이 이글이글 불탄다라는 燃이므로 動態로 바꾸어진 것이다. 또 花는 無情物이나 欲을 써서 有情物로 바꾸어 버린 시인의 묘미가 있다. 시인은 조물주나 창조주처럼 사물을 재창조하고 재구성한다. 그래서 시인을 하느님이 좋아하지 않아 시인들은 冷苦病이 많다. 황진이의 시에서 보면 동짓날 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는 시간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능력을 발휘한다.
承句는 산에 철쭉이나 진달래가 피었는데 아지랑이가 피어오른 전경을 우리가 직접 실경을 보는 것처럼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두보는 語不驚人死不休라하여 자기가 쓴 시가 남을 놀래키지 않으면 죽어도 쉬지 않겠다 하였다.
今春看又過은 금년 봄이 지나가는데 看을 써서 묘사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 농토에 나가 일을 하거나 여유가 있으면 여행을 떠나 봄에 참여를 하는데 두보는 봄에 참여하지 못하고 제 3자처럼 그냥 관망만 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又를 써서는 이런 관망이 1년 2년이 아닌 수년동안 계속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過도 그냥 지나가는 것을 나타낸다.
何日是歸年 어느날에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何日是歸年에서 年 대신 日이나 時를 쓰지 않은 이유는 年이 압운에 잘 맞기 때문도 있겠지만 긴 시간이어서 나그네의 지치고 힘든 생활이 내년에도 또 돌아가지 못할 것을 즉 절망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2.近體詩
근체시란 말을 처음 붙인 사람은 중당시기의 대표시인 백거이, 백낙천, 元縝중 元縝이다. 당시가 완성되다 함은 음악적인 경지가 최고여서 더 이상 형식에 있어 고칠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당시의 기본은 작은 의미의 律詩로 絶句를 小律詩라 하고 律詩보다 큰 것을 排律이라 한다. 큰 의미의 律詩 즉 근체시는 平仄, 對仗, 詩句가 법칙대로(格律) 지어진 것이다.
격률대로 안지어진 시는 고체시라고 한다. 그러므로 시의 형식은 시대구분에 의존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당나라 시기에도 고체시를 많이 지었는데 이런 시들은 근체시가 아닌 고체시이다.
율시의 격률은 ①句中平仄相間(한 구 속에서 평성이 한박자이면 측성도 한 박자여야 된다.) 上句平仄, 下句平仄 相對(상구평측과 하구평측이 반대가 되어야 한다.) ②首聯末聯外諸聯對仗(수련과 말련을 제외하고 모든 구는 대장한다) 절구시는 대장을 안해도 된다. 100련이라면 첫련과 말련을 제외한 98련은 반드시 대장해야 한다.

오언율시를 오율이라 하는데 글자수가 총 40자로 5언고시가 처음 발생할 때 격구유운이 기본이었다. 당나라에서 지어진 모든 오언율시를 구분해보니 수구에 압운하지 않은 것(首句不入韻)이 훨씬 더 많아 편의상 그것을 正例라 하고, 수구에 압운한 것(首句入韻)은 變例라 한다. 수구에 압운하였더라도 운으로 계산하지 않아 韻은 4개이다.
칠언율시 칠율은 7언고시가 처음 생길 때 매구마다 운을 달던 餘習이 그대로 남아 수구에 압운하는 것을 정례로 삼고, 압운하지 않은 것을 변례라 하는데 통계로 보아도 정례가 훨씬 많다.
*三韻小律詩(6句)의 문제 : 수련과 말련을 제외하고 대장이 한 개다. 근체시의 형식을 갖추었으면서도 6구이다. 이것도 근체시로 보아 율시의 변종이라 한다.
백낙천도 이런 시를 지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에 삼우노율을 지어 넣고 백운소설에서는 이 시와 백낙천의 시를 인용하여 落句缺이라 하였다. 이 3글자가 백운소설이 이규보의 작이 아님을 판정하는 글자로 백운소설에는 명나라때의 시화집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대개 백운소설은 조선조 홍만종의 작으로 보는데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었다)
*함석헌씨의 강연중 고구려의 가장 남자다운 사람을 온달로 꼽는다. 온달은 바보처럼 자신을 놀려도 헤 웃기만 했지만 국난을 당했을 때 똑똑한 채하던 놈들은 어디로 다 숨어 버리고 위난을 구하기 위해 앞장섰다. 백제의 남자다운 남자는 창해역사로 온백성을 압제하는 진시황의 폭정을 제거하기 위해 의거하고는 상도 바라지 않은 채 표연히 사라져 버린 남자였으며 신라의 남자다운 남자는 처용으로 마누라의 불륜을 보고도 춤으로 승화시켜 버린 남자다.
*六言律詩(48字詩)의 문제 : 휴지부가 없어도 지어진 예가 많지 않아 근체시로 보고 율시의 예외로 인정한다.

각 박자마다 박자를 대표하는 글자(節奏點)는 2번째 글자 下字들이다.

*排律
*排는 늘리다. 펼치다의 뜻으로 10句이상의 시로 대장을 하는 연을 두배이상 늘려 놓은 시들이다. 그 起源은 5언 율시보다 더 오래 된 것으로 격률을 그대로 지키고 압운은 5韻이상인 시가 배율이다.
배율의 운수는 喜歡用整數로 整數는 똑 떨어지는 수자를 의미하는데 10진법이나 6진법, 12진법에 따라 지었다. 10진법에 따른 시들은 두보의 春三十韻, 書懷五十韻 하듯 제목에 표시가 되는 게 특징이다.
*중당이후의 배율 : 試帖詩(시험답안시)는 5언배율시가 98%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는 오언시가 說理, 云道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 오언율시는 뜻을 표현하는데 그릇이 작고 논리를 표현하는데는 12구가 최적이기 때문에 발달하게 되었다. 반면 7언배율은 극히 드물어 독립된 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두보가 2개 짓고 백낙천이 1개 원진이 3개 지었을 뿐이다.
*聯句의 시초는 백량대에서 나왔는데 1句를 가지고서는 시가 될 수 없다. 운이 한 번 달린 것은 운문이 아니다. 최소한 2개가 있으려면 4구가 있어야 되고 절구가 된다.
그래서 초기에는 연작시를 여러사람이 1련씩 지었는데 수련을 짓는 사람이 신분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A가 첫구만 지으면 B는 첫구의 대구와 둘째련의 출구를 짓고 C도 이어 받아 가장 마지막 E는 마지막 련의 대구만 지었는데 가장 어려운 게 E다. 위에서 지은 사람들의 구들을 모두 收束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시는 反理合情이라는 말이 있다.

早發白帝城(李白)
朝辭白帝采雲間 아침에 채색구름 사이의 백제땅을 하직하여
千里江陵一日還 천리되는 강릉 땅을 하룻만에 돌아왔네.
兩岸猿聲啼不住 양안에 원숭이 소리는 울기를 그치지 않으니
輕舟已邁萬重山 가벼운 배는 이미 만겹산을 지나네.
백제성은 양자강 사천성 지역으로 흔히 장강삼협이라 불리는 곳이다. 중경에서 동쪽에 있다. 백제성과 강릉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고, 이 선의 양안이 등장하면서 선이 2차적 공간인 면으로 다시 만겹산의 기복이 3차원의 입체공간을 만들고 있다. 기구와 승구에서는 채색구름으로 인해 시각적 효과가 전구에서 자연의 원숭이 소리가 등장함으로써 배경음악이 자연스럽게 깔려 청각을 드러낸다. 이 시는 박진감,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시로 이 정도의 속도감이라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처럼 걱정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閨情(李白)
美人捲珠簾 미인이 주렴을 걷으니
深坐 娥眉 깊숙한 규방에 앉아 아미를 찡그리네
旦見疾痕濕 다만 눈물에 젖은 흔적만 보이네
不知心恨誰 누구를 원망하는지 알지 못하네
기구는 이미 걷혀 있는 것이고 승구는 이태백이 볼 때 아미가 아주 쪼금 움직인 것이며 전구의 운 것은 과거이고 지금은 흔적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움직임이 없어 공간도 깊숙한 규방 하나에 불과하다. 슬픔, 비극적인 느낌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다.
*시상이 빨리 변화하면 희극적인 느낌을 표현하는데 좋고 시상이 느린 경우는 비극적인 느낌을 표현하기에 좋다.

閨怨 (林悌)
十五越溪女 십오세 월계(서시가 월나라 사람이었다)처럼 예쁜 애기씨.
羞人無語別 남들이 부꾸러워 말없이 작별하여
歸來掩重門 돌아와 중문을 닫고
泣向梨花月 울면서 배꽃 사이로 비친 달을 향하여(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리네.
움직임이 극히 적은 시로 비극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대문에서 남편을 작별하고 여인의 거처인 규방에 돌아 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 시의 15세 월계녀는 처녀가 아닌 갓 결혼한 새색시이고, 중문으로 보아 그럴 듯한 가문의 규수이며, 人은 시댁 식구를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3.絶句
절구의 의의
(硯傭說詩)
絶句 蓋截律詩之半 或截首尾兩聯 或截二聯而成.(절구는 대체로 율시의 반을 자른 것으로 더러는 수련과 미련 양련을 자르기도 하고, 더러는 전반부를 자르고, 혹 가운데 두련을 떼내기도 한다.)(더러는 후반부를 자르기도 한다.)
絶句四類
①율시의 수·미련을 떼어다 쓰는 것.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대장을 쓰지 않는다. 칠언절구에 많다
②후반부를 떼어다 쓰는 것(경, 미련이 시가 된다) 두 번째로 많이 쓰였고, 오언절구는 수구불입운이 정례이므로 비교적 많다.
③전반부를 떼어다 쓰는 것(수, 함련이 시가 된다) 가장 적게 사용하는 것으로 오절, 칠절 모두 드물다.
④중간부분을 떼어다 쓰는 것으로(함, 경련이 시가 된다) 오절에서 비교적 많이 볼 수 있으나 칠절과 차이가 크지 않다.

(聲調四譜)
絶句之名 唐以前卽有之 徐東海源 玉臺新詠 別爲一卷 言古詩之支派也. 至唐而法律甚嚴 不惟律體異 卽與古體亦不同 或稱截哉句 或稱斷句 世多謂律詩之半 良爲絶句 非也. 蓋律由絶而增 非絶由律而減也. 絶句云者 單句爲句 句不能成詩 雙句爲聯 聯卽生對 雙聯爲韻 韻卽生 句法平仄各不相重 無論律古 對聯韻必四句而後備 故謂之絶 由此遞增 雖至百韻可也 而斷無可減之理.
(절구의 병칭은 당이전에도 있었다. 서동해가 편찬한 옥대신영에 별도로 한 권이 있는데 사실은 고시의 갈라진 한 형태이다. 당대에 이르러 법률이 매우 엄격해져 오직 율체와 다를뿐 아니라 곧 고체와도 같지 않다. 혹 더러는 절구라 칭하나 혹은 단구라고도 한다. 세상에 많은 이들이 율시의 반이라 하나 아니다.(틀렸다) 곧 율시가 절구를 근거로 해서 늘어난 것이니 절구가 율시를 근거로 해서 줄어든 것은 아니다. 절구라는 것은 한구는 구가 되는데 구는 시를 이를 수가 없고 두 구가 되면 연을 이루는데 연이 이루어지면 대(평측)가 생기고 두련이 이루어지면 운이 이루어지고 운이 이루어지면 점이 생기게 된다. 시구의 법도와 평측이 각각 중복되지 않는다. 율시니 고시니 따질것이 없고 , 對, 聯, 韻이 이루어지는 것은 반드시 4구가 된 이후에 갖출 수 있어서 절구라 하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 번 지은 시를 늘여 100운이 되는 수는 있지만 줄일 수는 없다.
성조사보에 근거하여 절구는 고체절구, 근체절구로 구분한다. 古絶은 율시 이전에 생산되어 평운, 측운시가 있다. 시구 속에서의 평측은 율시평측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拗絶 : 평측, 운율이 근체시에 맞으면서 국부적으로 규칙을 위배하는 절구. 과 對가 맞지 않는다.


聞官軍收河南河北 관군이 하남 하북 땅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들음 (두보)

劍外忽傳收蘇北 검각산 밖, 소북땅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홀연히 듣고
初聞涕淚滿衣裳 처음 듣고 눈물, 콧물로 옷에 가득하네
看妻子愁何在 문득 처자를 보니 근심이 어디에 남아 있는가
漫卷詩書喜欲狂 시와 편지를 함부로 말면서 기뻐서 미치더라
白日放歌須縱酒 한낮에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벌컥벌컥 술을 마시네
靑春結伴好還鄕 푸른 봄 짝을 맺어 준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네
卽從巴峽穿巫峽 곧 파협으로부터 무협을 지나
便下襄陽向洛陽 문득 양양땅으로 내려갔다가 낙양으로 향하네
*이 시는 기뻐서 어쩔줄 모르기 때문에 속도가 매우 빠르다. 특히 尾聯은 옛 사람이 이르길 단숨에 숨도 쉬지 않고 읽어야 느낌이 제대로 전달된다고 하였다. 즉 頃刻千里之勢.
*시화집에 이르길 하나의 시에 옛사람의 이름이 많이 나오면 點鬼簿라 했고, 地名이 많이 나오면 地理書라 했고, 숫자가 많으면 算學書라 했다. 이 시에도 제목의 지명까지 합치면 8개가 나오지만 시인들이 기피하는 것을 이용해서 시를 더 잘 쓴 케이스이며, 漢詩는 압축된 글이어서 제한된 수의 글을 이용하여 작자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부사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忽, 初, , 漫, 卽, 便의 허자를 써서 시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원래 시에서 허자는 분위기나 느낌만 전해준다. 이 허자가 手舞足蹈하게 한다.

4. 근체시의 용운
운이 같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중성과 종성이 같고 고저장단에 있어서도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중국어에서 초성은 聲母라 하고 중성과 종성을 합하여서는 韻母라 한다.
근체시에서 운을 사용하는 법칙은 매우 엄격해서 반드시 一韻을 지켜야지 通韻은 허락되지 않았다.
평성에 한 글자가 관운이면 운서의 수직에 놓인 상성, 거성, 입성은 모두 관운이다.
寬韻, 中韻, 窄韻, 險韻의 구분법은 어거지가 많다. 窄韻의 微, 文, 책과 같은 글자는 착운이면서도 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운이었다. 즉 시인이 시어에 사용하는 글자들은 따로 있어 험운의 글자들이 관운의 글자들보다 시어가 많으면 시를 짓기에 좋다라는 뜻이다.
出韻이란 운에서 벗어난 것으로 근체시에서 크게 꺼리는 것이며, 과거시험에서도 불합격처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