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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去來辭(귀거래사)

광명기계쟁이 2014. 11. 7. 18:06

이백 - 장상사2수


관직을 버리고, 자연을 벗삼는 전원 생활 속에서 인간성을 되찾는 기쁨을 나타낸 글

 

歸去來辭(귀거래사) 陶淵明(도연명)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奚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影翳翳以將入영예예이장입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歸去來辭
- 陶淵明 -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귀거래혜 전원장무호불귀)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기자이심위형역 해추창이독비)
돌아가야지
논밭이 묵어 가는데 내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으랴
이제껏 마음은 몸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홀로 근심하며 슬퍼하고 있는가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오이왕지불간 지래자지가추)
實迷塗基未遠 覺今是而昨非 (실미도기미원 각금시이작비)
지난날은 뉘우쳐봐야 바뀔게 없고
이제 앞으로나 그르치는 일 없으리
길은 어긋났지만 그리 멀어진 것은 아니니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알겠노라.


舟搖搖以輕 風飄飄而吹衣 (주요요이경 풍표표이취의)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문정부이전로 한신광지희미)
조각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일렁이고
바람은 훨훨 불어 옷깃을 날리누나
지나는 이에게 앞길을 묻노니
어스름한 새벽빛이 안타깝구나.


乃瞻衡宇 載欣在奔 (내첨형우 재흔재분)
童僕歡迎 稚子候門 (동복환영 치자후문)
저만치 집어름 처마가 보여
기쁜 마음으로 뛰듯이 간다
종들은 나와 반겨 맞이하고
어린 아들 문에 나와 섰네


三徑就荒 松菊猶存 (삼경취황 송국유존)
携幼入室 有酒盈樽 (휴유입실 유주영준)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인호상이자작 면정가이이안)
삼경엔 잡초가 우거졌어도

솔이며 국화는 아직도 그대로다
어린것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서니
동이 가득 술이 차 있네
스스로 잔을 들어 마시며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는 얼굴엔 기쁨이 가득 차누나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의남창이기오 심용슬지이안)
남쪽 창에 멋대로 기대 앉았으니
비록 방은 작지만 편키만 하다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원일섭이성취 문수설이상관)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游觀 (책부노이류게 시교수이유관)
뜰은 날마다 거닐어도 언제나 정취가 있고
문은 달았으되 닫힌 채 그대로다
지팡이 짚고 다니다 마음대로 기대 쉬고
때로는 고개 들어 즐거이 둘러도 본다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운무심이출수 조권비이지환)
景峠峠以將入 撫孤松而盤桓 (경상상이장입 무고송이반환)
구름은 산골짝을 돌아 나오고
날다 지친 새는 돌아올 줄 아는구나
햇볕은 어스름에 가리어 서서히 기우는데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홀로 서성이네



歸去來兮 請息交以絶遊 (귀거래혜 청식교이절유)
世與我而相遺 復駕言兮焉求 (세여아이상유 복가언혜언구)
돌아가야지
사귐도 어울림도 이제 모두 끊으리라
세상과 나는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에 오른들 얻을게 무엇이랴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열친척지정화 낙금서이소우)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于西疇 (농인고여이춘급 장유사우서주)
이웃과 나누는 정담에 기쁘고
비파를 타고 글을 읽어 근심을 삭이리
농부들 나에게 봄이 옴을 알리면
장차 나아가 서쪽 밭을 일구어야지


或命巾車 惑棹孤舟 (혹명건차 혹도고주)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 (기요조이심학 역기구이경구)
때로는 천 덮은 수레를 몰고
때로는 외로운 조각배를 저어
구불구불 깊은 골짝을 찾아가고
오르락 내리락 언덕길을 지난다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목흔흔이향영 천연연이시류)
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선만물지득시 감오생지행휴)
물오른 나무들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샘물은 퐁퐁 솟아 넘쳐 흐른다
만물은 때를 맞아 즐거운데
삶은 갈수록 저물어 가누나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이의호 우형우내복기시)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갈불위심임거류 호위호황황욕하지)
아서라
이내몸 세상에 얼마나 머물 수 있으랴
가고 머물음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닐진대
무얼 위해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는가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부귀비오원 제향불가기)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 (회양진이고왕 혹식장이운)
부귀영화도 내 바라던 바 아니고
신선의 세계(경지) 역시 기대할 수 없는 것
좋은 시절 바라며 홀로 나서서
지팡이 기대두고 김 매고 북돋운다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등동고이서소 임청류이부시)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요승화이귀진 낙부천명복해의)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맑은 시내에 앉아 시를 짓는다
사는 동안 이렇게 자연을 따르다
마침내 돌아가면 되는 것,
천명을 즐겼으면 그만이지
다시 무엇이 미심쩍으리

★★★★★★★★★★★★★★★★

 

吾不能爲五斗米折腰!

唐(618-907)나라는 우리의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에 해당되는 시기다. 唐詩라는 말에서 보듯, 詩문화가 무척 성행했었다. 李太白, 杜甫, 李商隱, 孟浩然, 王維 등, 기라성 같은 詩人들이 모두 이 때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제 淸나라 때 와서야, 全唐詩라는 책은 편찬되었다. 唐나라 2,200여명의 詩人의 48,000여수의 詩를 집대성해놓은 것이다. 300년이 채 안 되었던 唐王朝였음을 감안한다면 매우 엄청난 숫자다. 또한 시와는 다른 산문은 어떠했는가? 이 책이 나오고 얼마 뒤, 다시 당나라의 산문들을 모은 全唐文이 편찬되었데, 무려 3,042명의 文人의 18,488편의 산문들이 수록되었을 정도로, 그 기라성같은 작품의 폭이 넓었던 시대였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운문과 산문들이 많고 많다 보니 여러 流派가 뒤섞여 있었다. 시부문의 경우 田園詩派라는 유파가 있었다. 글자 그대로 田園에 묻혀 살면서, 그 정취를 노래한 시인들의 부류를 일컫는다. 당시 유명한 陶淵明(372-427)이 유파를 열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물론 이때는 東晉이 무대였고, 천하가 어지러워 老莊으로 대표되는 道家思想이 성행했었던 때였다. 선비들은 초야에 묻혀 벼슬에 나서지 않았고, 소위 식자층들은 시국을 한탄하며, 술과 시로 나날을 보냈던 시기다. 陶淵明이 그 중심에 있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게다가 도연명은 자연을 좋아하고 屈己從俗(스스로를 굽혀 세속에 따름)을 워낙 싫어하였다. 그래서 벼슬세계에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 憤世疾俗(세상에 울분을 느끼고 싫어함)하며 세상 벼슬을 멀리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대단히 많아 생활이 말이 아니게 궁핍하였다. 보다 못한 친척이 말단 관직 하나를 알선해 주었다. 彭澤令이라는 자리로 지금의 면장쯤 되는 자리였던 모양이다. 봉급은 쌀 다섯 말이었고, 그의 나이 마흔 하나였던 때다. 호구지책을 위해 잠시 천성을 굽혀 응하기는 했지만, 도무지 할 짓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집무는 내팽겨 두고 매일 술이나 마시며 자연을 노래하며 살았다.

이런 따분한 관직생활을 계속 하던 중, 하루는 상부의 공문 하나가 날아들었다. 군수가 순시를 나가니, 관아를 깨끗이 청소하고, 의관을 단정히 하여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구속을 싫어했던 그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때 도연명이 내던진 그의 사표 기록 문구는 이랬다.

吾不能爲五斗米折腰!(오불능위오두미절요)
 -내 어찌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있으랴!

이렇게 미련 없이 구호와 같은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부임한지 두 달 남짓되던 때의 일이다. 집에 돌아와 자연을 벗 삼으면서,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읊은 것이, 바로 그 유명한 ‘歸去來辭(귀거래사)’다.

도연명이 41세에 알량한 현령자리를 내던지고 고향에 내려오며 지은 귀거래사.
“쌀 다섯 말에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는 그의 말에서 볼 때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사 더럽고 치사한건 여전한 듯하다.
새삼 절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제 다시 수레에 올라

무엇을 구하리...